가로수길은 무엇을 약속했나
좋은 거리는 유명한 가게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가게 사이를 걷고, 예상하지 못한 곳에 들어설 이유가 있을 때 거리의 이름은 경험이 된다.
최승위 · 브랜드디자인경영 박사
어떤 가게는 목적지가 된다. 그곳에 가기 위해 길을 찾고, 볼일을 마치면 돌아온다. 그런데 거리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기억될 수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뿐 아니라, 그 사이를 걷는 과정에도 찾아갈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가로수길을 브랜드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질문은 여기에 있다. 사람을 모으는 가게가 있는 것과, 걷고 싶은 거리가 되는 것은 같은 일일까. 유명한 매장 몇 곳만으로 거리 전체의 매력을 설명할 수 있을까.
거리의 개성은 하나의 간판보다 간판과 간판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옆 가게와 다른 취향, 잠깐 멈춰 볼 만한 창, 예정에 없던 문을 열어 볼 이유. 각각은 작아 보여도, 함께 놓이면 그 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이 된다.
그래서 거리의 가치는 입점한 브랜드의 이름을 더한 것과 같지 않다.
잘 알려진 매장은 방문할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익숙한 브랜드는 선택의 부담을 덜어 주기도 한다. 다만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선택지만으로는 굳이 이 거리까지 와야 할 이유를 충분히 만들기 어렵다. 편리함과 고유함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반대로 작은 가게라고 해서 저절로 거리의 개성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규모가 작거나 낯선 이름이라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곳이 어떤 경험을 보태는가다. 오래된 가게와 새 가게, 큰 매장과 작은 매장이 각자의 이유로 선택받을 수 있을 때 거리는 한 가지 취향에 갇히지 않는다.
이 차이를 방문객이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일도 중요하다. 가게마다 무엇이 다른지, 어느 골목으로 이어지는지, 잠시 머물 자리는 있는지. 각 매장이 자기 문 안에서 잘하는 것과 별개로, 거리에는 그 사이를 이어 주는 경험이 필요하다.
브랜드디자인경영의 관점에서 거리를 가꾼다는 것은 모든 간판을 비슷하게 맞추는 일이 아닐 것이다. 서로 다른 가게들이 제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길로 읽히게 하는 일에 가깝다. 통일된 외관보다 중요한 것은 차이가 드러나고, 그 차이를 찾아가기 어렵지 않은 환경이다.
그 차이가 한 번의 방문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가게들이 자기 경험을 쌓아 갈 시간도 필요하다. 새로움만 계속 바뀌는 거리보다, 처음 발견한 곳을 다시 찾아갈 수 있는 거리가 더 깊이 기억될 수 있다. 발견과 익숙함이 함께 쌓일 때 단골은 한 가게를 넘어 그 주변까지 다시 걷게 될지도 모른다.
가로수길은 무엇을 약속했을까. 이 질문에 내가 기대하는 답은 ‘유명한 가게가 모인 곳’보다 ‘서로 다른 곳을 발견하며 걸을 수 있는 거리’에 가깝다. 거리의 다음 장면도 가장 눈에 띄는 간판 하나보다, 그 사이를 한 번 더 걷고 싶게 만드는 이유에서 시작될 것이다.
필자의 해석을 담은 칼럼입니다. 일러스트는 상징 이미지이며 특정 거리나 업소가 아닙니다.
- 확인일
- 2026-10-22